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한국 사회는 변했다. 정말인가? 절반은 진실, 절반은 거짓이다.
사직을 결심한 시점이 의미심장하다.
당대표 산하 특별위원장 5인을 임명했다
동성 커플뿐만 아니라 이성 커플, 친구 같은 동반자, 비혼 공동체 등등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자는 취지다.
소개받은 광수 형의 친구들 가운데 꽤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광수 형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광수 형의 나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게이커뮤니티에 '데뷔'하던 2004, 5년만 하더라도 게이들끼리 오랜 시간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서로의 이름이나 나이 같은 인적 사항을 물어보는 것이 실례였다. 누군가가 아웃팅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상대방의 나이나 인적 사항을 대충 알았고, 나 역시 광수 형의 나이를 외모에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했다.
우리 아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아이에게 성정체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이는 자기를 여자라고 생각하며 몸도 바꾸고 싶다고 해서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아이의 호칭을 '딸', '언니'로 바꾸었다. 아직 수술도, 호적 정정도 하진 않았지만 가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여자'로 인정해주니 큰딸도 의상이나 화장 등의 젠더 표현을 더 자유롭게 하고 있다. 딸과 함께 식당을 가거나 쇼핑을 하면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직접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잠깐의 동행에도 내가 느낀 시선의 불편함을 아이는 매일 느낄 텐데, 하루하루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도 싶다.
2015년 6월 26일은 누군가에게는 '노예해방'만큼 중요하고 역사적인 날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동성결혼(Same-Sex Marriage)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그 결과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미국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정 이후에도 일상 곳곳에 스며든 차별적 제도가 시정되고,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상처를 입고 또 견디며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동성애를 질병으로 취급하던 시대를 지나 동성결혼 합헌 판정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의 싸움 덕분에, 다음 세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한국의 성소수자들도요.
아무도 모른다. 상담으로 들어오는 동성 커플들의 사연을. 가장 먹먹하게 만드는 일은 언제나 어느 한쪽이 사망한 뒤의 이야기들이다. 사그라드는 파트너에 대해 수술동의서 한 장 못 쓸 때의 자괴감을, 죽은 이의 가족에게 집이 넘어가 같이 살던 공간에서 내쫓기던 막막함을, 유품을 챙겼다고 망인의 가족이 절도죄나 사기죄로 고소할 때의 황망함을, 파트너의 가족이 '너 때문에 죽었다'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할 때의 비참함을, 유골을 빼앗기고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모르게 될 때의 절망감을.
나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줄이고 싶다. 줄일 것이다. 어두운 색으로 칠해진 이미지에 빛을 더할 것이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는 무겁지도 심각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위로받아 마땅할 슬픈 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마치 이런 것처럼.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기무상이구요. 나이는 서른, 좋아하는 건 애플, 영화, 책, 음악. 참, 그리고 전 레즈비언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민법에서 말하는 "부부"라는 법률용어는 그 자체 중립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이에 "배우자"라는 법률용어와 마찬가지로 그에 굳이 자연적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결합이라는 한정된 의미만을 부착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특정한 생물학적 성을 전제로 구성된 법률용어가 아니라, 혼인의 결과로 탄생한 한 쌍의 생활공동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우리 민법에 채택된 것일 따름이라고 밝혔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건가. 모두가 결혼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이지 유서 깊은 결혼 반대주의자다. 특히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몹시 반대한다. 어떤 의미에서 결혼식이라는 것은 가족과 친지와 친구와 초청하지 않으면 나중에 섭섭하다며 불평을 늘어놓을 것 같은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서 비슷하게 생긴 예식장에 몰아넣고는 '저희 지금 이 순간부터는 합법적으로 잠자리를 가지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의식에 가깝다. 아, 그렇게 생각하니 어째 좀 부끄럽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혹시 그런 생각을 갖고 주례 선생님 앞에 서서 "네!"를 외치셨습니까?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우면서 그날 밤 거기에는 고무를 끼울 생각을 하면서?